20161112 연극 '올드위키드송'

문화생활|2017.09.03 04:58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연극이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동물 없는 연극’이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거의 3년 만인 것 같다. 대학로에서 시간 맞는 연극을 찾던 중 올드위키드송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제목과 장르, 감독 정도만 확인하고 영화를 보던 습관 때문에 올송도 별다른 정보 없이, 무지한 상태로 보게 되었다.

 

내가 본 회차는 마슈칸 역에 안석환 배우, 스티븐 역에 이현욱 배우가 출연했다. 입장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자 잠시 후 스피커에서 독일어 멘트가 흘러나왔다. 암전이 되었다가, 다시 밝아진 무대 위에 안석환 배우가 있었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다른 배우가 무대에 올라오는 게 보였다. 2인극이므로 배우는 모두 등장한 셈이다. 마슈칸과 스티븐, 둘이 티격태격하며 만들어가는 이야기 속으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갔다.

 

오스트리아 빈의 마슈칸 교수는 멀리서 찾아온 미국인 학생, 스티븐에게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가르치게 된다. 비록 스티븐은 마슈칸이 아닌 쉴러 교수를 찾아온 것이었고, 노래가 아닌 반주를 배우러 온 것이었지만. 첫 만남에서 가까워지기 힘들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은 레슨이 진행되는 세 달 동안 상처와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 교감하기에 이른다.

 

올드위키드송을 음악극이라 하는 것은 단지 극에 음악이 나와서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 개의 가곡으로 구성된 ‘시인의 사랑’은 단순한 레슨 곡을 넘어서 각 장면의 주제 의식을 표현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제1곡은 아름다운 봄날, 화자의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가 붙어있지만 그 밑에 서정적이다 못해 우울한 곡조가 깔려 있다. 마슈칸이 그런 제1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의 반영으로 읽혔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가곡들이 마슈칸의 과거와 연관된 내밀한 심정을 묘사하는데 중점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마슈칸에 자꾸만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였던 게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제12곡이 흐르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곡의 화자가 꽃밭에서 wandering하는 장면에 마슈칸이 문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현실을 외면해야 했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더이상의 설명이 없어도 그 장면에서 해당 곡이 흐르는 것만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죄책감이 생생히 전달되었다. 음악극이라는 타이틀답게 배우가 반을 채우고 있다면 나머지 반은 음악이 채우고 있는 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음악 외에도 나를 사로잡은 장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배우는 물론 무대 장치부터 소품, 극의 요소까지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안석환 배우는 거대한 민족적 비극을 가슴에 안고 있지만 겉으로는 새침한(?) 매력을 두른 마슈칸이었으며 이현욱 배우는 다소 러프한 면모가 있는 스티븐으로, 나는 이현욱 배우의 스티븐이 쏟아내는 감정의 질량에 때때로 압도당하고는 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울렸던 것은 바로 마슈칸이 보여주는 인생에 대한 관점이었다. '인생이란 게 복잡할 줄 알았는데 단순하더라'는 대사가 가슴에 콱 박혀서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먹먹하기만 하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의 대화가 휘몰아치듯 이어지지만 그 와중에도 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극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관극한 게 후회가 되기도 한다. 만약 선행학습(?)을 하고 봤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번쯤 더 보고 싶다. 올드위키드송이 전해주는, 삶이란 환희와 슬픔의 공존이라는 메시지가 주는 감동에 다시금 젖어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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